May 4, 2020

AntiUrbanism

14년 전, 대학원에서 한학기를 이태리 로마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그 때 들었던 수업중 수업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수업의 마지막 과제로 각자가 도시를 주제로 동영상을 찍어오는 수업이 있었다. 나는 도시의 서로 다른 부분들, 너무 커져버린 도시의 어떤 부분들은 서로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서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지만 그러한 공간들이 사람을 통해 연결된다는 막연한 생각을 바탕으로 동영상을 찍게되었다. 동영상에 대한 어딘가 자신이 사는 동네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일을 하러 간 사람을 카메라가 쫓아가고, 그 사람이 들어가는 공간에서 만난 다른 사람을 다시 카메라가 쫓아가면 결국 처음과는 다른 예측하지 못한 공간으로 가게된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는 준비시간도, 타인을 카메라를 가지고 쫓아갈 용기도, 열정도 부족하여 아주 간단한 버전을 찍게 되었다. 내가 살던 Trastevere의 거리에서 아무나 한명을 선택하여 카메라를 들고 쫓아가다가 가까운 piazza에 다다랐을 때, 그 곳에서 원래의 사람을 스쳐지나가는 다른 사람을 다시 쫓아갔고, 이사람은 결국 버스를 타고 내가 알지 못하는, 처음 가보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내가 따라갔다.) 그리고 동영상은 버스에서 내려 그 곳이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었는데, 사실 이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으나 수업중 발표할 때엔 왠지 아무런 설명없이 그냥 동영상만 보여주는 것으로 끝마치게 되어 아마도 이러한 생각을 알아챈 사람은 교수님을 포함해 아무도 없었으리라. 아쉽긴 했으나 그냥 그렇게 지나간 수업이었다.

그렇게 설명없이 동영상을 제출한 이유는 내가 어떤 현상 - 사람이 공간을 연결한다는 - 에 대한 가설과 관찰이 있었고 영상으로 보여주긴 했으나, 과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건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학부 때에 한 설계과제에서 도시의 서로 다른 공간들을 이미지를 통해서 연결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어서 이러한 현상은 나름 나의 관심거리였으나 이미 인터넷을 통해서 모든것들이 연결되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숟가락을 얹거나 억지로 건축을 인터넷이라는 유행에 끼워맞추려는 시도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아무튼 내가 했던 동영상 작업의 의미를 스스로도 모른채로 긴 시간이 지나서 2020년이 되었을 때 문득 그 동영상의 시나리오 - 매일 벌어지는 시시해보이는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보는 시도? - 가 사회적으로 큰 의미로 다가오는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COVID-19 이 그것이다.

그 무대는 동영상에서 시도했던 한 도시의 스케일을 넘어서 지구의 한편에서 그 반대편까지, 지구의 구석구석에까지 다다른다. 그 모든 공간들은 사람을 통해, 사람들의 이동을 통해 연결되어지고 한 공간과, 너무 멀리 떨어진 다른 공간들은 연속적인 사람들의 접촉을 통한 바이러스의 전파라는 현상을 통해 동질성을 띄게된다. 16년 전에는 이런것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나의 희끄무레한 동영상이 이런 의미가 있었을 줄이야.

산업의 발달과 경제의 발달은 도시의 발달을 가져왔고 많은 사람들은 서로 접촉하고 함께 일하고 상호작용하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내고 공간을 창출하면서 도시를 발전시켜왔다. 현대사회에서 도시는 너무 막강한 존재이다. 이 도시의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도시 바깥의 저밀도 공간은 농업을 통해, 서버번의 주택들을 통해 에너지를, 사람들을 제공해왔다. 이 세상의 중심이 도시로 밀집되면서 생산중심의 세상은 소비중심의 세계로 변화해왔다.

그런데 이런 도시중심의 세상에 카운터 펀치를 먹인 바이러스! 세상의 모든 도시가 바이러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물론 이 공격은 도시만이 아니라 모든 세상의 구석구석까지 미쳤지만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도시들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이 집과 멀리 떨어진 대도시의 심장부까지 통근을 하는 경우는 그 바이러스의 전파가 더 극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현대의 대도시, metropolis, megalopolis 는 이러한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고 너무 많은 사람들의 관계와 동선이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네트웤이 복잡하면 할수록 '기초감염재생산수', Basic Reproductive Ratio, R에 영향을 더 미칠수 있을것이란 생각이다. 물론 이 값은 도시네트웤의 밀도와 상관없는 감염질병 자체의 성향에 대한 값인데, 실제 매크로한 스케일에서 나타나는 양상은 네트웤의 밀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바이러스의 공격에 좀 더 안전한, 좀더 sustainable한 도시, 혹은 현대 도시와 다른 공간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원격으로 일을 하게 되었고, 많은 산업은 이미 잘 적응하고 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은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어떤 직업은 어쩔 수 없이 일터에 나가서 일을 해야하는 성격이지만, 어느정도의 사람들은 굳이 직장에 가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공간들은 굳이 도시에 몰려 있지 않아도 된다면, 그런 centralized model 이외의 de-centralized, rhizoometic 한 도시공간을 생각해볼 수 있고,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가 앞으로도 계속 발현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sustainable한 도시로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것이다. 기존의 Urbanism 에 반해 이러한 도시에 대한 이해와 생각들을 일단 AntiUrbanism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더 좋은, 더 구체적인 생각들은 그 각자의 이름을 갖게되겠지만 그 전에, 거기까지 도달할 때까지는 이렇게 불러보는 것도 괜찮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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