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4, 2020

세가지 공간의 기억 - Three Memories on my Obsession in Space

 가장 처음 내가 공간을 만들었던 기억이다.

초등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때였으니 1980년 혹은 1981년,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 때였다. 세살 많은 형과 나는 같은 방을 사용했었고 각자의 책상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책상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내 책상을 없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로서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있다.

그리 크지 않은 방을 형과 함게 사용하였기에 부모님은 2층 침대를 사주셨는데, 조그만 어린이에게는 참 재미있는 물건이었고, 상대적으로 큰 관심이 없어보였던, 혹은 그저 어린 동생에게 늘 양보를 했던 형은 역시 나에게 2층을 양보해주었다.

이 2층 침대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그렇듯이 나에게 아주 좋은 놀이터가 되었는데, 우선 이 2층 침대는 요즘 나오는 2층 침대와는 조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의 침대는 상대적으로 말랑말랑한 매트리스를 받쳐주기 위해 프레임을 가로지르는 살들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텐데 이 침대는 그런것이 없었다. 프레임을 둘러서 튀어나온 ledge가 매트리스를 떠받치는 구조였는데, 매트리스 자체가 스스로 구조적인 매트리스였다. 정확히 어떤 구조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매트리스는 바닥이 딱딱했고, 일종의 약간 딱딱한 스폰지같은 것으로 채워져있었다. 더욱 특이한 것은 이 매트리스는 종방향으로 두개로 나뉘어져서 설치가 용이했고, 내 기억으로 어린 나 혼자서도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웠었다. 

이런 특징은 나로하여금 이 매트리스를 놀이도구로 사용이 가능하게 하였는데, 결국 나는 이 두개의 매트리스중 바깥쪽 - 2층 침대는 벽에 기대어 있었으므로 벽 반대쪽에 있던 매트리스 - 의 것을 들어올려 바깥쪽으로 세워놓았다. 이러면 원래 위치에 놓여있는 매트리스와 그 돌려진 매트리스 사이로 작은, 하지만 내 작은 몸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틈이 생기고 그 틈은 침대의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틈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사용하던 얇은 이불을 침대의 바깥쪽에 커튼처럼 걸쳐서 1층을 완전히 닫혀진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함으로 이제 침대가 있던 방 속에 또 다른 하나의 개폐가 조절되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때로는 닫혀진 1층 공간 속의 안락함을 즐기고 이내 뚤려진 틈으로 2층으로 올라가면 그 높이가 주는 또다른 느낌을 즐길 수 있었다. 이 공간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즐거움을 느낄 때 이 2층침대는 나의 놀이터이자 내가 창조해낸 첫 공간이 되었다.


두번째 공간은 역시 초등학교 시절, 이 공간은 일종의 temporary 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집 거실의 소파는 꺽여진 L자 형이었는데 직각으로 꺽여진 것이 아니라 둥글게 돌아가는 부분이 있었고 자연스레 그 뒷쪽에 벽과의 사이공간이 생겨났다. 아주 작은 공간이었지만 나 역시 작은 몸집의 어린아이였기에 내가 들어가기엔 충분한 공간이었다. 들락 날락하며 놀다가 결국 소파를 바깥쪽으로 좀 밀어내어 약간 더 큰 공간을 만들어내고 우산을 가져와 지붕까지 만들어냈다. 단순하지만 안락한, 다박, 벽, 지붕이 모두 있는 나름 완전히 분리된 공간이었다. 소파와 벽 사이의 틈으로 드나들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세번째 기억에 남는 공간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은데, 매일 늦잠을 즐겼고 오래된 소니 라디오를 듣는 것을 즐겼다. 이 때 내 책상은 벽을 향해 붙어있는 대신 마치 손님과 상담하기 위해 놓인 의사의 책상처럼 방의 한 구석에서 긴방향 벽에 수직으로 붙여놓았고 의자는 그 책상 뒤로, 않으면 방의 중앙을 향하도록 자리잡고 있었다. 의자의 뒷쪽 벽엔 커다란 유리창이 있어서 그 바깥쪽 베란다로부터 빛을 받고 있었다.

이 때 나는 침대를 사용하지 않고 요와 이불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여느때와같이 늦게 일어난 나는 책상에서 의자를 빼어내고 의자가 있던 책상과 뒷벽 사이에 내 요를 밀어넣었다. 그리고 책상 아랫쪽에는 작은 선반이 있었는데 이 선반에 소니 라이오를 설치했다. 그리고 이 이부자리에 다시 누웠다. 책상과 뒷 벽의 사이의 작은 공간 하지만 거기에 누우면 책상의 아래 공간 때문에 누워있는 것이 엄청 편하고 감싸지는 느낌마져 들었다. 더구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DJ의 목소리와 음악은 다시 이 공간을 특별한 곳으로 만들어주었다.


가끔 떠올렸었지만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제와 다시 나의 삶을 정리하며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나에게 특별한 놀이의 한 부분이었던 것 같고 어쩌면 원래 선택했던 전공, 물리학을 그만두고 건축을 하게 된것도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마져 들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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