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2, 2021

성향 혹은 성격

 내가 깨닳은 나에게 있는 강한 성향 하나가 있다. 무언가를 하다가 벽에 부딪히거나 길을 잃었을 때 다시 처음 시작점으로 쉽게 돌아가버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복기하고 어디에 문제점이 있었는지, 아니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롭게 다른 길로 시작하려는 성향이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이도 저도 아닌 점도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돌아보자면 나는 초등학교 때 세번의 전학을 하여 네군데의 학교를 다녔다. 부산, 서울, 부산, 서울의 순이었고 부산에서 부산으로 돌아갔고 서울에서 서울로 돌아왔지만 매번 다른 학교였고 매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어야 했다. 어쩌면 이 당시의 경험과 기억이 나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과거는 잊고 새출발!" 서울과 부산의 거리라는 것은 어른들에게는 4~5 시간의 기차 혹은 운전의 거리, 전화 한통이면 지인과 대화할 수 있는 거리였을지 모르지만 어린 초등학생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특히 마지막 6학년 때 부산에서 서울로의 전학은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큰 충격이었다. 부산의 아이들과는 너무 다른 아이들의 성향, 부산의 학교와는 너무 다른 학교생활들 때문에 그동안 내 몸과 마음에 베어있던 행동, 습관, 사고방식들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했다. 부산의 광남국민학교에서 3학년, 4학년, 5학년, 그리고 6학년 1학기동안 내가 쌓아온 친구들과의 관계, 동네에서 놀던 기억들, 학교 선생님들과의 관계, 수업시간에 열심히 손들고 "저요, 저요." 하던 습과과 기억들, 나의 자아를 형성하고 있던 수년간 쌓아온 기억과 관계의 구조는 서울이라는 새롭고 차갑고 쌀쌀맞은 환경에서 무너졌다기보다는 차라리 눈처럼 녹아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첫 대입에 실패하여 재수하게 되었을 때에는 이러한 성향이 도움이 된 면이 있다. 재수를 한다는 것은 다시 고3으로 돌아가 1년의 시간을 처음부터 다시 보낸다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재수를 한다는 자체가 나에게 큰 부담은 아니었었다. 물론 덜 힘들게 해주는 다른 요소들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기회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런 성향이 미루는 성향(procrastination)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반대일지도. 대학생때 수업시간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나와도 "나중에 다시 보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즉, 현재와 미래를 맞바꾸는, 과거로부터 쌓아온 돌 무더기 위에 지금 조심스럽게 하나의 돌을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한꺼번에 쌓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군대를 다녀온 후엔 이런 성향이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꿈꾸어온 물리학도의 길을 포기하기로 한것이다. 대학원 첫 학기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 "그래 이 길이 아닌가보다."라고 생각하고 새로이 관심을 갖게 된 컴퓨터와 디자인중에 저울질하다가 건축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건축을 시작한지 올해로 21년이다. 짧지 않은 시간인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나는 다시 취업의 문턱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그 고민중에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고민이 스며들어 있는 것을 보면서, 한가지에 오랜시간 집중하며 한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뚝심을 부럽게 쳐다보며 나는 왜 이런것일까를 깊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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