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가까이 살다보면 나의 취향이나 좋아하는 것들을 과연 언제부터 어떻게 좋아하기 시작하였었는지를 기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나잇대의 사람이라면 대부분 느꼈을테지만 나이가 먹어감에따라 시간이 더 빨리 흐르고 신경써야할 일이 많아지며 멀티태스킹이 잘 되지 않기때문에 기억이라는 것은 스무드하게 재생되는 영상이라기보다는 뚝뚝 끊어지는 70년대 일본 에니메이션에 가까운 법이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흐르던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때때로 선명하게 떠오를 때가 있고, 그런 기억들 중에 기록해놓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잔과 함께 간단히 햄치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는데, 먹는 와중에 내가 국민학생 시절 처음 햄치즈 샌드위치를 접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이 기억이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는 않을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짧게 글로 남겨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의 광남 국민학교. 광안리 해수욕장 옆의 매립지에 세워진 아파트 단지에 있던 학교였다. 나는 이곳을 2학년 말부터 6학년까지 다녔는데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5학년까지는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는데, 때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 이 시절엔 정부가 국민들의 생활을 사사건건 간섭하고 감놔라 배놔라 하던 때였고 대다수 국민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시기였다. 그 간섭은 국민학생의 도시락통 속에까지 이르렀으니, 밥을 지을 때엔 쌀만 사용해선 안되고 보리나 잡곡을 섞어서 지어야 했고, 수요일엔 쌀을 소비하는 대신 밀로 만든 빵류를 소비해야 했다. 지금은 받아들이기 힘든 디테일한 간섭이고 이런것까지 간섭한다는게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 당시 사람들, 특히 국민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겐 꽤나 심각한 주제여서, 심지어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을 열고 과연 보리나 잡곡이 섞인 도시락을 가져왔는지, 아니면 흰쌀밥을 가져왔는지 선생님이 검사하고 흰쌀밥을 가져온 아이는 얼척없이 선생님의 지적을 당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었다.
암튼, 혼분식이라는 것이 질서를 지키는 국민의 한 덕목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 매주 수요일은 분식의 날이었는데 솔직히 이 분식의 날 나의 어머니가 어떠한 빵을 내 도시락으로 싸주셨는지는 희한할 정도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신, 내 친구 정영학이 가져온 도시락 속엔 생전 처음보는 빵이 들어있었다. 플라스틱 컨테이너에 가지런히 담긴 샌드위치였는데, 네모난 식빵의 가장자리를 잘라내고 빨간 슬라이스드 스모크햄과 노란 체다치즈로 넣고 반을 갈라 만든 깔끔한 햄치즈 샌드위치였다. 물론 그 당시엔 이걸 무어라 부르는지도 몰랐고 그저 두툼한 하얀색 사이의 얇은 붉은색과 노란색의 조화가 엄청 맛나보이기만 했다. 아마도 내가 하나만 먹어보자고 요청을 했었던 것인지 영학이는 그중 하나를 나에게 주었고 난생 처음 햄치즈 샌드위치라는 것을 맛을 보았다. 햄은 나도 나름 익숙한 식품이었던 것에 반해 치즈는 정말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고 왠지 내 입에 맛지 않았는지 한입을 먹어본 후 그 치즈는 빼버리고 햄과 식빵만을 먹었는데 그 때의 맛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그 이후로 햄치즈 샌드위치는 내 입맛에 언제라도 환영받는 아이템이 되고야 말았고 지금도 일년중 절반정도는 냉장고에 얇게 썰린 스모크 햄과 체다치즈를 보관하고 여유가 있는 아침이면 햄치즈 샌드위치를 아침으로 즐기며 40년 전의 점심시간을 떠올리곤 한다.
식빵, 햄, 치즈, 때론 마요네즈. 이 단순한 가공식품들의 조합이 나를 이루는 한 부분처럼 느껴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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