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달리기, 뜀박질... 어떤 단어로 표현하던간에 나의 대부분의 삶에서 나와 가까이에 있지 않은 단어였다. 학창시절 축구를 좋아했지만, 키도 작고 왜소한 체격에 빨리 달리지도 못했기에, 꽤 괜찮은 발재간이 있었음에도 동네축구에서조차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군장교로 입대하기 몇주전, 육체적인 준비, 혹은 나의 육체에 가해질 충격에 어느정도는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강변으로 달리기를 해보았다. 어느정도를 달렸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꽤나 힘들게 달렸고 땀도 많이 흘려서 집에 돌아왔을 때엔 좀처럼 느껴보지 못한 피곤함과 지침으로 거의 일주일간이나 몸살을 앓았었던 기억이다. 그 후 입대할 때까지 다시 달릴 여유도 의지도 갖지 못했다.
14주간의 군사교육 기간동안 '걷는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훈련시간 이후 잠에 들기 전, 숙소 안에서 책상과 침대 사이를 오가는 정도의 거리만이 걷는 동작을 허락할 뿐이었다. 그 이외의 모든 단체활동과 단체활동 사이엔 달리기만이 존재했다. 매주 금요일엔 '구보'시간이 있었고 가장 힘든 훈련이었다. 군장을 메고 소총을 가슴 앞에 수직으로 들고, 뻣뻣하고 딱딱한 군화를 신고 아스팔트를 달리는 것은 그야말로 고역이었고 45분여간 단 한순간도 견딜만하지 않은 고통의 연속이었고, 마지막 깔딱고개를 넘을 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도로 숨을 빠르게 쉬고 있어도, 숨을 전혀 쉬고있지 않은것같은 괴로움은 끝날것 같지 않은 악몽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그런 괴로움에도 끝이 있었으니, 14주 훈련의 13주차에는 무거운 군장을 모두 벗어버리고 맨몸에 운동화를 신고 같은 코스를 달렸는데, 놀랍도록 가볍고 빠르게 전력질주를 하는 내 자신에 놀라버리고 말았다. 스물네살 때의 일이다.
그 이후, 무슨 이유건간에 잠시 잠간 짧은 거리를 내달린적은 있었으나 다시 훈련 전의 몸으로 돌아온 나에게 달리기란 여전히 나와는 말도 섞기 힘든 어색한 존재였다.
이십 칠년이 지난 오십한살의 중년의 아저씨가 되서야 내 자신의 달리기를 시작했다. 누구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스스로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한두번 달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일년 이상 지속하고 있고, 혼자서도 우리동네, 옆 동네 레이스에 참가하는 등, 달리기가 내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동네 한바퀴를 뛰고 집에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몸의 상태는 점점 좋아진다. 이제 더이상 일상의 달리기가 나를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회복력이 좋아진것이다. 나이 들어 시작한 탓에 달리기 자체의 퍼포먼스, 혹 매트릭스는 크게 성장할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나의 육체적, 체력적 베이스라인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언젠가 42.195km의 마라톤 레이스에서 3시간 30분을 깨는 날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들 어떠한가. 지금의 실력으로는 4시간 반도 쉽지 않을것이므로 달리기 인생의 목표를 4시간 언더로 설정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어쨋던, 올해엔 두번의 5K, 한번의 10K를 달렸고, 달릴때마다 더 기록은 좋아지고 있다. 내년 2026년에는 하프마라톤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10월 말쯤에 열리는 프린스턴 하프에 나갈지도 모르겠다. 언덕이 많다고 하니 어쩌면 더 플랫한 레이스를 찾아볼지도 모르겠다. 2박 3일정도의 여행과 섞어서 다른 도시의 레이스에 참가해보는 것도 재밌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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